| 제목 [국문] |
『환단고기』를 통해서 본 열 개의 부여와 부여 천 년의 역사 |
| Subject |
The ten branches of Buyeo and the millennium history of Buyeo as interpreted through Hwandangogi |
| 저자 |
윤창열 |
| Author |
Yun Chang-Yeol |
| 발행년도 |
2025 |
| 초록 |
원시부여는 초대 단군이 넷째 아들 부여를 봉한 땅으로 이것이 최초의 부여
이고, 위치는 지금의 길림성 농안 장춘 일대이다. 이 부여라는 명칭은 이후 모든 부여
명칭의 근원이 된다.
BCE 425년 단군조선의 44대 구물 단군은 우화충의 반란을 평정하고 장당경아사달
에 도읍하여 대부여로 국호를 바꾸었는데, 이것이 단군조선의 제3왕조이다. 47대
고열가 단군이 제위를 버리고 떠나는 BCE 238년까지 188년간 지속되었고, 장당경
은 지금의 요령성 개원이다. 대부여라고 국호를 쓴 이유는 수도를 비록 옮기지만 이
전 수도 백악산아사달이 부여에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에 이를 계승한다는 의미가
있다.
부여사의 실질적인 시작은 북부여이다. BCE 239년 해모수에 의해 건국되었고 해
부루가 가섭원으로 쫓겨가는 BCE 86년까지 154년간 지속되었으며, 백악산아사달
이 있었던 농안 장춘지역이 중심지였다.
한무제가 위만왕조를 멸망시키고 북부여를 침략하자 동명왕 고두막한이 의병을 일
으켜 한나라 군사를 격퇴하였다. 이에 BCE 108년 졸본 땅에서 임금의 자리에 오르
고 BCE 86년 북부여의 5대 임금인 해부루를 가섭원으로 추방하고 북부여의 정통을
계승하였다. 고무서 단군을 거쳐 고주몽이 BCE 58년 제위에 올라 BCE 37년 고구
려로 국호를 바꾸니 이 때까지의 부여를 동명부여 졸본부여 또는 후기북부여라고
부른다.
동명부여의 고두막한의 힘에 밀려 북부여의 5대 임금 해부루가 BCE 86년 가섭원으
로 이주하니 이곳은 흑룡강성 통하현이고 이를 동부여라고 부른다. 동부여는 이후
금와왕, 대소왕을 거쳐 CE 22년 고구려 대무신 열제에게 망할 때까지 역년이 108년
이었다.
CE 22년 동부여가 멸망할 당시 금와왕의 막내아들이 압록곡에서 해두왕을 죽이고
갈사수 가에 나라를 세웠는데 이를 갈사부여 또는 북갈사라고 한다. 갈사수는 우수
리강 유역으로 추정되며 CE 68년까지 3대에 걸쳐 47년간 지속되었다.
CE 68년 북갈사의 3대왕 도두왕이 고구려에 항복하자 고구려에서 혼춘을 식읍으
로 주고 그를 동부여후에 봉해 주었는데 이를 남갈사라고 부른다. 410년 광개토열
제는 동부여를 정벌했는데, 이 동부여는 혼춘에 봉해졌던 동부여후의 후손으로 추
정된다. 이렇게 보면 동부여후의 역년은 343년이 된다.
서부여는 CE 22년 동부여가 멸망할 때 고구려는 대소왕의 4촌 동생을 개원 서북에
있는 연나부에 봉해주었다. 이후 서부여(연나부부여)는 대릉하 상류로 이동하여 중
국과 고구려 사이에서 나라의 발전을 도모하였다. CE 285년 모용외에게 격파되어
나라가 거의 멸망직전까지 이르렀고 그 후 다시 회복하여 나라를 유지하다가 CE
494년 고구려에 병합되었으니 총 역년이 473년이 된다.
두막루국은 410년 광개토태왕에 의해 멸망한 남갈사의 유민들이 송화강 하류를 건
너 그 북쪽에 세운 나라로 추정된다. 726년 대진국과 흑수말갈에 의해 나라가 양분
되어 멸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남부여는 백제의 26대 성왕이 538년 웅진에서 사비로 수도를 옮기면서 일시적으로
사용되었고 성왕 사후 다시 백제로 복구된 것으로 보인다. |
| 키워드 |
환단고기, 부여, 대부여, 북부여, 졸본부여, 동부여, 갈사부여 |
| Abstract |
Primitive Buyeo referred to the land granted by the first Dangun to his fourth son,
Buyeo. Located in the present-day Nong’an Changchun region, it became the origin of
all subsequent names bearing the Buyeo. Great Buyeo (425–238 BCE) was established
during the third royal dynasty of Dangun Joseon and had its capital at Jangdanggyeong
Asadal, which corresponds to present-day Kaiyuan in Liaoning Province. The
substantive beginning of Buyeo history is generally traced to Northern Buyeo. It was
founded by Hae Mosu (239–58 BCE), and was named for its location north of Great
Buyeo. Its capital was established in the Baekaksan Asadal region, corresponding to
present-day Nong’an Changchun region.
Dongmyeong Buyeo (also known as Jolbon Buyeo, 108–86 BCE) was founded by
King Go Dumak, who defeated the invasion of Emperor Wu of Han. In 86 BCE, he
expelled the descendants of Hae Mosu and succeeded Northern Buyeo, which was
referred to as Later Northern Buyeo. It continued to exist until Go Jumong founded
Goguryeo. Eastern Buyeo (86 BCE–22 CE) was founded by Hae Buru, who had been
expelled by King Go Dumak, and established its capital in Tonghe County,
Heilongjiang Province.
North Galsa (22–68 CE) was established by the youngest son of King Geumwa in the
region along the Ussuri River. South Galsa (68–410 CE) emerged in 68 CE, when King
Dodu, the third ruler of North Galsa, was installed in Hunchun as the Lord of Eastern
Buyeo after he surrendered to Goguryeo. West Buyeo (Yeonnabu Buyeo, 22–494 CE)
emerged in 22 CE, when a fourth cousin of Daeso surrendered and was subsequently
installed in the Yeonnabu region, which later developed into an independent state.
Dumaeklu-guk (410–526 CE) was a state established in the north of the Songhua River
by the remnants of South Galsa after its destruction by King Gwanggaeto the Great.
South Buyeo (538–554 CE) was a temporary name used by King Seong of Baekje when
he relocated the capital from Ungjin to Sabi in 538 CE. |
| Keywords |
Hwandangogi(환단고기), Buyeo(부여), Daebuyeo(대부여), Northern Buyeo(북부여), Jolbon Buyeo(졸본부여), Eastern Buyeo(동부여), Galsa Buyeo(갈사 부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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